순창조씨(옥천조씨) 문중의 입향시조인 조유(趙瑜:1342∼1428)를 제향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齋室). 지정번호 : 전남민속자료 제31호 지정연도 : 1994년 12월 5일 소재지 : 전남 순천시 주암면 주암리 217 시대 : 조선시대 크기 : 재실 정면 5칸 측면 2칸, 문간채 정면 3칸 측면 1칸 분류 : 사묘재실 1994년 12월 5일 전라남도민속자료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주암리 217번지에 있다. 순창조씨 문중에서 소유하고 있다. 조유는 고려 말기 진사에 급제하여 육정농부정까지 지낸 인물로, 그의 부인 담양국씨와 손자 첨지중추부사 조지산(趙智山) 이하 5대의 신주도 모시고 있다. 송재성(宋在晟)의 기문이 남아 있다. 마을 맨 위쪽 산록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최초의 건립 시기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현재와 같은 규모로 건립한 것을 볼 때, 주변 여건과 기록에 따라 1781년(정조 5)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1812년(순조 12)에 중수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담장 안에 재실을 배치하고 서편에 서당을, 동편에 행랑을 두었다고 하는데, 이로써 정헌재가 서당과 묘각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지의 상단 동쪽에 사당을 두고 하단 북쪽에 전사청을 두었으며, 사당과 같은 축 선상 앞쪽에 문간채를 두었다. 재실은 이 지역의 전통적 재실 구조인, 중앙에 대청을 둔 일(一)자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이고 맞배지붕이다. 정면의 가운데 3칸은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고, 양쪽 끝의 1칸씩은 제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묶어갈 수 있도록 온돌방으로 배치하였다. 지붕에는 한식 골기와를 얹고 양쪽 박공면에 방풍판을 달았다. 기단 위에 덤벙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圓柱]을 세웠으며, 그 위에 주두를 놓고 공포는 2익공식으로 꾸몄다. 기둥 사이마다 3구씩 소로를 두었다. 일반적인 5량 구조이고 창호는 모두 띠살문이며, 대청 정면에는 4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았다. 전체적으로 재실은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는, 일반적인 유교건축의 모습이다. 문간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맞배 솟을삼문이며, 가운데 칸은 재실의 정문이다. 정헌재 뒤편으로 북동쪽 가까이에는 예장묘(禮葬墓)로 알려진 조유의 묘역이 있으며 근처에 겸천서원(謙川書院), 상호정(相好亭:전남문화재자료 49), 승주 조순탁가옥(전남민속자료 30), 영모재, 정려각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마을은 순창조씨의 낙남(落南) 입향지로 후손이 지금까지 500년 이상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고려말 진사에 급제하여 육정농부정까지 지낸 옥천조씨 조유를 배양한 제실이며 그 후손이 500년 이상 대대로 살아온 터자리이며 이정헌제는 입향시조를 제향하기 위해 1781년(정조 5) 에 세운 문중제실로 그 주변에는 입향시조의 묘와 종가, 겸천서원, 상호정 등이 갖추어져 있어 이들과 함께 동족 조직과 선조숭배의 상징적인 유적임. 주암리는 옥천 조씨가 500년 이상 대대로 살아온 터로, 이 재실은 맨 처음 이 곳에 자리잡은 사람인 조유를 제사 지내기 위해 문중에서 세운 건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건립 당시에는 담장 내에 재실과 서당, 행랑채를 둔 것으로 되어있어 서당과 제향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대지의 상단 동쪽에 신주를 모신 사당을, 하단 북쪽에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을, 앞면에 문간채를 두어 담장을 둘렀다. 재실은 一자형 기와집 형태로, 옆면에서 보아 사람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을 올리고 있다. 중앙에는 대청을 두고 한쪽 측면에 제사를 지내러 온 사람들을 위한 온돌방을 두었다.